게이의 직업



일전에 어울려 술을 먹는데 어느 누가 농담삼아 그랬다.

"나도 막 게이처럼 옷만들고 막 그림그리고 그런거 하고싶어"

그는 토목업계에서 일하는 게이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거기 옷만들고 그림 그리는 게이, 아무도 없었다.


살면서 때때로 놀라게 되는데,

성적 정체성을 인식한 이후로

그 문제가 인생 내내 거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마음 속에 있는 강력한 배심원처럼 어느 순간에는 자기 의견을 내고 가끔은 

그게 전부일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드는 것은 세상은 이성애자에게 너무 편리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곳곳에서 불편함이 쏟아져 나온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왼손잡이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것과 그나마 유사하다면 유사하달까.



하지만 성적 정체성과 먹고살기위한 재능이  '이미지적인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게이들이 여러 분야의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이야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물론 대다수의 여러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옷이나 머리나 디자이너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다른 분야에도 게이는 많다.

공대에는 수많은 게이들이 다니고 얼마 안되는 체대에도 꽤 있다. 그들이 이후 관련 업계로 나가는 것야 상식.

컴퓨터 공학자인 앨런 튜링도 게이였다지 않나.

그래도 체대다니는 게이는 뭐랄까 수요가 많지만 공급은 적다(?)


아무튼 아무튼. 취업한 게이들은 사회 초년생이 되어 바쁘게 살고 동기들과 어울리다 보면서

점점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나의 게희 라이푸도 이제 점점 멀어지고 게희 친구들과도 점점 안녕이로구나 그리운 종로 길바닥 세이굳바

포차 아줌마 보고싶을거예요
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려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성적 정체성이야말로 業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는 때가 다시 온다.

이를테면 아직도 버젓이 남아있는 접대 문화라든가.

접대문화와 게이가 만나면 태반이 시트콤같은 일이 벌어진다.

접대받으면 좋아야되는데 게이들은 우울해진다. 등신들아 나에게 남자를 접대해줘

 

또한 동기들과의 관계도 점차 사무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결혼과 육아라는 인류 보편적인 관심사에서 게이들은 소외되어 있으니까

점차 대화주제도 없어지고 친해져서 축의금 많이내기도 싫으니까

인간적으로 어울리는 것도 철저한 한계가 있다. 동창이라면 추억이라도 파는데

밑천도 없는데 뭘 판단 말이야?!

어찌보면 본격적인 게이 라이프는 일반인들과의 확연한 선을

인식하는 그때부터 정주행이 시작된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 다시 주섬주섬 박카스를 챙기고 종로로 나설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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